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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14일 현지 최대 규모 노동자 단체 렌고(연합·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의 약칭)의 요시노 토모코(芳野友子) 회장을 만나 임금 인상 방향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일본에선 매해 새 회계연도(4/1부터 이듬해 3/31까지)가 시작되기 직전인 2~3월 무렵마다 각 기업과 노동조합 간 임금협상이 열려요. 봄철에 열린다고 해서, 주로 ‘춘투(춘계생활투쟁의 약칭)’라고 부릅니다.
매해 열리는 이 춘투엔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 원리금균등분할 용합니다. 이를 ‘관제(官製) 춘투’라고 일컫습니다. 정부가 재계에 직접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겁니다.
집권 자민당 정권은 저성장 탈피를 위해 임금 인상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밀어붙여 왔으나 손에 잡히는 성과는 거두지 못해왔습니다. 정권과 렌고 간 관계는 경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총리와 렌고 회장이 만난 건 아소 우리카드 다로 총리 집권기인 2009년 이래 16년 만이었다고 합니다. 내각에선 이시바 총리를 필두로 ‘넘버 2’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담당상 등 각료가 총출동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을 상대로 한 '상호 펀드투자 관세'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이시바와 요시노 회장 간 만남에서 주된 이야기 주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위협’이었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지난 3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상호 관세’ 정책을 선포하며 일본에 24%의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트럼프가 창업진흥원 9일 중국을 뺀 국가별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혀 현재 ‘기본 관세’인 10%만 적용된 상태. 하나 자동차 등 주요 부문에서 대미 수출 규모가 세계 상위권인 일본 입장에선 불안을 떨치기 시기상조입니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이 16일 미 워싱턴 DC 백악관을 직접 찾아 관세 협상에 나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자리에 깜짝 등장하기도 했습니 동원제일저축은행 다.
요시노 회장은 이시바에게 “(미국 관세로 인한 글로벌 경제 혼란이) 우리 임금 인상 흐름에 찬물을 끼얹을까 염려된다”고 했습니다. 이시바 총리는 이에 “모든 정책을 총동원해, 특히 중소기업 임금 인상에 관세 문제로 인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돕겠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일본 기업과 노동자 간 임금 협상인 ‘춘투(춘계생활투쟁)’ 기간 거리에 나선 노동자들. 피켓엔 '임금 인상' '내일을 바꾸자'라고 적혀 있다./일본 정보산업노동조합연합회
일본 매체 JB프레스에 따르면, 올봄 춘투를 통한 임금 인상률(렌고 3차 집계 기준)은 5.44%로 지난해 5.25%에서 소폭 올랐습니다. 2년 연속 5%대입니다. 지난해 총 임금인상률은 33년 만에 5%를 넘어섰습니다.
특히 조합원 수가 300명 미만인 중소기업을 기준으론 5.00% 올랐다고 합니다. 지난해 동기(4.69%)를 뚜렷하게 앞섰습니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인상률 격차가 갈수록 확대된 가운데, 이 격차를 잡아보겠단 이시바 총리를 비롯한 자민당 정권의 ‘바람’이 조금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부 이즈미시 지역 로고
일본 오사카부 이즈미시(和泉市)는 2년 전인 2023년 대졸 일반직 초임을 3만엔 인상해 전국 지자체 중 최고액(22만2300엔·약 223만원)이 됐습니다. 금년도 초봉은 지역 수당까지 포함해 27만50엔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이즈미시가 지난 14일까지 진행한 정원 11명의 대졸자 채용엔 549명이 응모했다고 합니다. 전체 채용으로 따지면 47명 정원에 800여 명이 응모, 배율이 약 17배에 달했습니다.
일본도 한국처럼 과거 출세길로 여겨진 공무원 시험이 박봉, 업무 강도 등의 문제로 ‘찬밥’ 신세가 된 건 마찬가지입니다. 인구 20만명이 좀 안 되는 이즈미시에 이토록 많은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몰린 건 일본 사회가 얼마나 임금 인상에 목말라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일본 TBS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1화 한 장면. 1980년대에서 2024년으로 시간 여행한 주인공이 한 가게에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보고 "아르바이트 시급은 안 올랐네”라고 말하고 있다./TBS
일본 민영 방송 TBS는 지난해 1~3월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제하의 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1986년 중학교 체육 교사로 일하던 남자 주인공 ‘오가와’가 의도치않게 2024년으로 시간 여행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일본 ‘올해의 유행어 대상(자유국민사 주최)’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흥행했습니다.
이 드라마 1화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난데없이 쇼와(昭和·1926~1989년 일본 연호)에서 레이와(令和·2019년~)에 떨어진 오가와는 못 알아보게 달라진 거리의 풍경과 마천루, 행인들의 옷차림을 보며 경악합니다. 그러다 한 가게에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를 보곤 이렇게 말합니다.
“거리도 바뀌고, 가게도 바뀌고, 사람들 옷차림도 다 바뀌었는데 아르바이트 시급은 똑같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일본 임금은 매해 잰걸음일지라도 소폭씩 오르고는 있지만, 물가 상승을 반영한 임금 이른바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넘어 내림세를 타고 있습니다. 1993년을 ‘100’으로 따졌을 때 실질 임금은 2000년대 중반까지는 상승하다가 이후론 내리막입니다. JB프레스는 “특히 인플레이션이 심화한 최근 2~3년에 하락세가 심하다”고 전했습니다.
올 춘투에서 높은 수준의 임금 인상이 확정되면서 실질임금도 상승권으로 돌아설 전망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멈출 줄 모르고 고공행진하는 물가 상승률입니다.
최근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매달 3% 전후로 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식료품 등 서민 일상과 가까운 물품 물가 인상률이 매섭습니다. 정부가 비축미를 풀었는데도 가라앉을 줄 모르는 이른바 ‘레이와의 쌀 소동(부족난)’ 여파로 쌀류 CPI가 92.1%나 올랐습니다. 외식을 대표하는 ‘스시’는 4.7%, ‘전기 요금’은 8.7%, ‘가솔린’은 6.0% 올랐습니다.
지난해 10월 일본 사이타마현 아사카시에 있는 슈퍼마켓 올림픽아사카다이점 쌀 코너 모습. 이바라키산 햅쌀이 작년보다 2배 이상 오른 4102엔에 판매되고 있었다./도쿄=성호철 특파원
이번엔 일본 정규직과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 간 임금 차를 따져보면, 20~24세 구간에서 전자가 연 22만1000엔을 받고 후자가 19만6200엔을 받습니다. 차이는 약 2만4800엔.
비정규직 임금 인상 문제와 별개로 크지 않은 이 격차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규 취업하지 않고 아르바이트 따위로 생계를 잇는 ‘프리터(フリ?タ?)’ 현상을 부추긴다는 지적입니다. 레버리지 주식회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 내 프리터로 추정되는 인원은 134만명, 총인구의 약 1%입니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만성적인 저임금 문제가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 일본 연호) 들어 일본을 괴롭힌 장기 저성장, 이른바 ‘잃어버린 30년’의 원흉이라고 꼽습니다. 이런 관측을 엿볼 수 있는 사례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도쿄 디즈니랜드
현지 관광 명소이자 테마파크 대표격인 ‘도쿄(실제론 도쿄에 인접한 지바현 우라야스시 소재) 디즈니랜드’는 설립 40주년이었던 2023년 성인 일일권 티켓값을 1만엔 이상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습니다. 9400엔에서 1만900엔으로. 도쿄 디즈니랜드 티켓값이 1만엔을 넘어서는 건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 디즈니랜드와 쌍두마차인 오사카 유니버셜스튜디오도 성인 티켓값을 1만400엔으로 올리면서, 일본 서민 사이에선 ‘과도한 가격 인상’이라는 울분이 터졌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이 같은 반응이 되려 글로벌 물가상승 추세에 발맞추지 못하고 일본을 더더욱 저성장 국면에 처하게 한다는 자조 섞인 비판이 당시 확산했습니다. 도쿄 디즈니랜드 입장권값은 세계 12개 디즈니랜드 중 최저입니다. 일본 다음으로 싼 축인 홍콩은 가장 저렴한 티켓이 엔화 기준 1만1000엔입니다.
일본 라멘/조선일보DB
일본인들은 일상과 밀접한 상품이나 서비스일수록 가격 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현상이 ‘1000엔의 벽’입니다.
스시·규동 등과 함께 일본 국민 음식으로 꼽히는 것이 ‘라멘’입니다. 일상과 너무 가까운 탓인지, 일본 사회엔 이 라멘이 ‘한 그릇에 1000엔 이상 내고는 사 먹지 않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짙습니다. ‘1000엔의 벽’은 이런 인식 때문에 붙은 오명입니다.
원재료, 광열비 등 가게 운영에 필수인 물가는 치솟는데 메뉴값을 못 올리게 하는 원흉이란 겁니다. 라멘값이 1000엔을 넘기면 손님 발길이 끊기고, 1000엔 이하로 유지하자니 인플레이션 탓에 재정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도산한 라멘집은 72곳으로 전년보다 30% 넘게 늘었습니다. 연간 기준으로 역대 최다입니다. 현지 시장조사 업체 제국데이터뱅크는 “전기료, 원재료 등 물가가 급등하는 반면 ‘라멘 한 그릇은 1000엔’이란 인식 탓에 값을 올리지 못하고 폐점할 수밖에 없던 사례가 많다”고 진단했습니다.
일본 빙과 업체 아카기유업이 아이스크림 값을 10엔 올리면서 임원진 등 사원 수십 명이 회사 앞에 도열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일본 대형 회전초밥 체인인 쿠라스시는 2022년 그릇당 가격을 5~55엔 인상할 때 사장이 직접 회견장에 나와 고개 숙였습니다. “재료값 상승이 급속으로 진행되는 데다 끝도 안 보인다. 기업 측 노력엔 한계가 있다”고 했죠.
빙과 업체 아카기유업은 지난해 간판 아이스크림 ‘가리가리쿤’ 값을 10엔 올리면서 임원진을 포함한 사원 수십명이 회사 앞에 도열해 고개 숙이는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현지 대표 규동 체인인 마쓰야, 스키야는 지난해 메뉴값을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즉 심야(深夜)에만 약 7% 올려받는 계책을 냈습니다. “원재료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게 공통적인 설명이었지만, 요식업 전문가 사이에서마저 “‘싸다, 빠르다, 맛있다’는 규동의 이미지가 심야 요금 도입으로 사라질 수 있다”는 회의적 반응이었습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는 물론 영세상인이 운영하는 동네 식당들까지 메뉴값을 100엔씩만 올려도 2주~1달 전 가게 입구와 내부 잘 보이는 벽에 소비자가 납득할 근거를 담은 장문의 설명문(사실상 사과문)을 게시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 작성 양식까지 자영업자 사이에서 공유됩니다.
그리고 이 사과문과 무관하게, 가격을 올린 가게엔 손님 발길이 최소 당분간 끊기는 것이 일본에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도쿄 디즈니랜드
이 같은 정서를 반영하듯 디즈니랜드가 입장료를 1만엔 이상으로 올린다는 발표와 함께 일본인 사이에 울분 섞인 반응들이 쏟아진 것입니다. “디즈니랜드가 정말 갈 수 없는 ‘꿈의 나라’가 되어버렸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디즈니랜드 티켓이 1만엔이라는 게 너무 비싸다는 반응이야말로 일본을 저성장하게 만드는 고질적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현지 매체 IT미디어비즈니스는 “소비자들이 가격 인상을 비판하는 마음은 알지만, 이런 발상 탓에 일본이 가난해진다. 인기 있는 상품과 서비스, 시설이라면 값이 오르는 게 ‘세계의 상식’이다. 일본만 무리한 염가를 요구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소비자들의 생활 물가 상승에 대한 과민 반응으로 기업들의 저가 경쟁이 심화하고, 소비자에게 고물가 부담을 넘기지 못하는 기업들은 이를 인력 감축 혹은 임금 동결로 전가하는 현상입니다. 급여에 비해 과한 노동을 요구하는 직장을 꼬집는 ‘블랙 기업(ブラック企業)’이란 용어가 일본에서 처음 유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일본 블랙기업을 나타내는 삽화. 맨 오른쪽 말풍선에 "죽을 각오로 일해라!"라고 적혀 있다./tenshoku-web.jp
현지 매체 오토난사는 “저가 경쟁의 대가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부담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직원들은, 회사 밖에서 소비자 입장이 되면 마찬가지로 서비스 공급자들에게 늘 같은 수준의 값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펼쳐집니다.
일본 정부가 노사간 임금 협상에 개입하는 월권을 부리면서까지 임금 인상에 집착하는 것은 이러한 악순환을 어떻게든 끊어보겠다는 의지 때문일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장기 저성장을 탈피하려면 ‘임금 상승을 수반하는 형태의 인플레이션’이 필수라고 지적합니다. 임금이 올라야 외식 등 생활 물가 고착화, 이로 인한 저가 경쟁의 늪에서 벗어나고 경기가 활성화하는 성장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쇼와 시대 후반부, 미국을 넘보는 수준까지 성장했던 일본 경제(이른바 ‘버블 경제’)는 ‘플라자 합의(1985)’, ‘미·일 반도체 협정(1986)’ 등을 거쳐 헤이세이 들어 완연한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래픽=김하경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일본은 1989년 1위로부터 2023년 35위로 추락했고요. 1989년 4.9%로 높은 수준이었던 연간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023년 1.9%에 그쳤습니다.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 천황 즉위와 함께 레이와 시대가 개막했습니다. 일본 헌정 사상 최초로 직전 천황이 사망하지 않았는데 후계자가 즉위했습니다.
아키히토 상황의 당시 적잖은 나이(86)가 표면적인 이유로 제시됐지만, 현지 학계에서는 이를 계속해서 경제를 좀먹는 장기 저성장에서 탈피하려는 일부 ‘주술적’인 취지로 읽는 관측도 있습니다.
흔히 일본 장기 저성장을 ‘잃어버린 30년’이라 하죠. ‘잃어버린 10년’에서 ‘잃어버린 20년’으로, 또 30년으로 계속 늘었습니다.
아키히토 상황이 재위한 헤이세이 시대가 1989년부터 2019년까지입니다. 딱 30년입니다. 장기 저성장의 굴레를 30년으로 끊고, 새 성장의 길을 열겠다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는 것이죠.
지난해 7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오른쪽)와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도쿄 일본은행 본점에서 새로 발행한 1만엔·5000엔·1000엔권 지폐를 소개하고 있다./연합뉴스
일본 재무성은 레이와로 연호가 바뀌었던 2019년 별안간 지폐의 인물을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국가 숙원인 디지털화(化)를 위해 민관이 나서 ‘캐시리스(현금 없는 사회)’ 사업에 주력인 상황인데, 난데없이 종이 지폐 교체라니요.
그중 최고액권인 1만엔권 인물은 메이지 시대 사상가이자 명문 사립 게이오대 설립자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에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로 바뀌었습니다.
시부사와는 1869년 일본 근대화의 상징인 메이지 유신 이후 대장성(現 재무성) 차관으로 일하다 뛰쳐나와, 제일은행(現 미즈호은행) 총감역으로 합류한 뒤 일본에서 500여 기업을 설립하거나 설립에 기여한 인물입니다. 일본상공회의소, 도쿄전력, 도쿄가스, 오지홀딩스, 이스즈자동차, 도호, 시미즈건설, 기린홀딩스, 도쿄증권거래소, 제국호텔 등 그가 세운 기업들이 아직도 일본 사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시부사와 초상이 실린 1만엔권은 지난해 7월부터 발행되고 있습니다. 일본 지폐에 ‘기업가’의 초상이 실리는 것은 그가 처음입니다.
에이이치 장남인 시부사와 도쿠지의 삼남(三男)의 손자 시부사와 겐(63)이 지금 일본 세태를 꿰뚫는 진단을 해줬습니다. 지난해 방구석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이치 장남인 시부사와 도쿠지의 삼남(三男)의 손자 시부사와 겐(63)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는 완전히 ‘다메(?目·소용 없다)’라는 말을 듣지 않았나요. 흔히 ‘잃어버린 30년’이라 하는데, 사실 잃어버렸기보단 (일본이) 누워버린 거에요. 그 사이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이 일본 경제를 추월했죠.”
그는 “개인적으로 일본 경제엔 일종의 ‘파괴와 번영의 리듬’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30년은 에도 시대(막부)의 상식이 파괴됐고, 그다음 30년(1900~1930년 무렵) 일본은 번영했습니다. 이후 전쟁이란 파괴가 다시 도래했고, 그 불타는 들판이 안정되고 나서야(1960~1990)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뤘어요. 그리고 다시 ‘파괴의 30년’이 찾아온 겁니다.”
“그런데 1990년부터 30년은 2020년까지잖아요. 그렇다면 (2020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한 번 일본이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런 중요한 때에 19~20세기 일본 번영을 이끈 고조부를 다시 끌어와 그때와 같은 성공을 이루려는 목적 같아요.”
자민당 정권의 발버둥과 조금씩 희망 여지가 보이는 춘투 결과를 보면, 일본이 염원하는 시대의 변화가 장기적으로나마 현실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트럼프발 관세 위협, 아직도 진행형인 ‘두 전쟁(우크라이나-러시아, 중동 위기)’, 전통 제조업의 위기와 이를 부추기는 저출산·고령화 현상. 산적한 과제가 아직은 많습니다. 일본은 ‘저임금과 장기 저성장’이란 악순환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요.
다음 주 다시 일본에서 가장 핫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현해탄 건너 당신이 궁금해 할 일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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